2025년을 보내며

AI야 고마워

2026-01-19

엄청나게 대사건이라고 할만한 순간들은 없었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다사다난을 겪었다. 나 스스로 개발을 대하는 태도도 제법 변하기도 했다. 글이라도 남기지 않으면 나조차도 그 순간들을 잊을까 남겨본다.

2025년도는 체감하기에 2024년도 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살아온 전체 수명에 대비해서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5살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20%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시간의 밀도가 매우 높지만, 30대인 나의 1년은 인생의 3.3%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시간의 밀도가 낮다. 이미 익숙한 일들의 반복이라 뇌가 이를 짧게 처리한다고 한다. 어쩜 이렇게 최적화가 잘 되어있을까 싶다.

25년도 상반기에 팀 구성에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 팀을 구성하던 팀장 • 시니어급 개발자들이 퇴사하고, 나와 비슷한 연차의 팀원들로 팀이 재편되었다. 아직도 그 사이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매년 팀이 바뀌었다. 23년도 11월에 입사한 내가 팀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이 되었을 정도니.

변화라는 게 태풍 같다가도 어느 순간 태풍의 눈처럼 고요해져서, 최대한 내가 맡은 일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전념했다. 내가 맡은 일은 다음과 같다:

  1. 포트폴리오 프로젝트
  2. 강제 SSR 구조 개선
  3. 모노레포 개선 및 터보레포 도입
  4. 디자인 시스템 기반 구축

포트폴리오의 경우 사업부의 요구사항을 전달받아 진행한 성격이 컸지만, 그래도 각 작업들은 내가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대부분 "왜 이렇게 동작하지? 왜 이렇게 쓰고 있지?" 같은 의문으로 시작했다. 의문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팀원들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3번과 4번은 아직 진행 중인 작업들이라 완료되면 언젠가 블로그에 기록을 남겨야겠다.

서비스에 새로운 도메인을 추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기존 코드의 설계를 개선해 개발자 경험을 향상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단순히 서비스 개발만이 아닌 다른 작업들로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작업 과정을 현시점에서 되돌아보니, 역시 나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해결로 이어지는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개발을 배운 기간과 실제로 업으로 삼은 기간을 합치니 어느새 4년 정도 되었다. 일로써 제법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전보다 흥미가 좀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시간의 밀도가 낮아져서 그럴까, 아니면 매번 비슷하게 일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혹은 AI 에이전트 등장으로 개발의 재미가 떨어진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초심을 잃었거나,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나 말고도 이런 생각 하는 사람이 있나 해서 찾아보니 레딧에도 꽤 비슷한 생각이 있었다. 한 가지 마음에 드는 답변이 있었는데, 인생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한때 벅찼던 일을 기껏해야 사사로운 일로 만들 수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AI 누가 쓰라고 협박했냐는 답변도 있더라)

해당 답변을 보고 내가 왜 흥미를 잃었는지 실마리를 찾았다. 처음 개발을 접했을 때 나를 벅차게 했던 수많은 구현과 디버깅 과정들. 당시엔 넘어야 할 산이었던 그 일들을, 이제는 AI에게 위임하고 사사로운 루틴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하지만, 현재의 나는 여전히 그 경계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직접 구현하며 느꼈던 성취감을 AI에게 위임해도 좋을 일로 취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AI의 편리함은 원하면서 한편으로는 내 즐거움을 뺏어가는 침입자처럼 느끼기도 하니, 완전히 모순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약간의 권태와 정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화면에 버튼 하나를 띄우고 데이터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이제 그 과정은 AI의 도움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영역이 되었다. 여전히 코드를 직접 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그 즐거움을 빼앗겼다고 서운해하기보다 그만큼 확보된 나의 여유 자원을 어디에 쓸지 고민해야겠다.

2026년에는 개발의 재미를 '구현' 그 자체에서 '창의적인 해결'로 확장해 보려 한다. 단순한 기능 개발을 넘어 제품의 본질, 비즈니스 가치 그리고 사용자 경험이라는 더 깊은 부분에서 흥미를 찾아보고 싶다. 또 일이라는 틀을 벗어나 오로지 나의 창의성만을 동력으로 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재미를 찾아보고 싶다.

아무튼 2026년 힘내보자.

2026 will be my year